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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길, 인간화” - ‘자살, 비인간화의 정점’

12월 13일(목) 2시, 다사리마당에서 ‘자살, 비인간화의 정점’이라는 주제로 “오래된 새길, 인간화 대화모임”이 열렸습니다. ‘자살’은 비인간화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극단적 양상으로서 지난 몇 차례 대화모임에서 꾸준히 제기된 문제이다.

박형민 박사(사회학, 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는 ‘자살행위의 성찰성’이라는 발제를 통해 자살자들이 모두 별종이라거나 사회적인 실패자로서 우발적으로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오히려 최악의 선택이고 자살이 차악인 상황에서 자살을 ‘선택’하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자살이 지닌 성찰성을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실패를 해도 재기할 수 없고 살아갈 희망을 주지 않는 사회, 삶이 최악의 선택이 되는 비인간적인 사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참가자들은 자살의 원인은 경제적인 고통과 관계의 단절, 명예를 중시하는 사회문화, 가족의 해체 등이 결합된 복합적 요인이라고 간주하면서 가족과 사회의 본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자식의 성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프로젝트 패밀리가 아닌, 국가의 개발체제에 동원된 사회가 아닌 인간화를 지향하는 가족과 사회의 이상에 대해 고민했다.

우리 사회가 ‘자살이 만연한 사회’가 되었다는 묵직한 경고에 한국사회의 비인간화를 극복하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공감을 나누는 자리였다.

[발제문 중에서] 실패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자살하는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거나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삶의 어려운 시기를 맞아 그것을 해결하지 못했거나 죽음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혹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인이 불행한 상태에서 어떻게든 삶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더 잔인한 일일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자살을 개인이 취할 수 있는 권리의 하나로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지적이 일면 타당한 면이 없지 않으나, 실제로 자살이라는 사건은 사회적이며 개인적인 손실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이 최선의 것이라 여기지도 않으며, 따라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자살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버릴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계속 살아있으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들에게 살아갈 이유와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자원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즉 사회가 생명을 존중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개인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설정되어 있으며 이를 예방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으며, 이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여러 가지 개입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처럼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설정된다면 국가적 자원이 그에 상응하게 투여되어야 할 것이지만, 많은 부분 선언적인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많으며 자살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에 비하여 가시적인 성과는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와 사회가 그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삶이 보장될 수 있도록 경제적인 자원을 분배하는 배려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에 앞서 우리는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욕구와 필요를 이해해야 하며,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적극적인 마음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사례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죽음이 그들에게 있어 단순한 끝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때로는 명시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하여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들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앞으로 반드시 존재할 것이 틀림 없는 또다른 실패자들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실패한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남기로 결심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들 스스로에게도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부여해 주는 것이 될 것이다.